2009년 12월 22일 화요일

One Day by AHN Doojin



09_12 AHN Doojin



I. 전시 개요
- 전 시 명 :
- 작 가 : 안두진
- 기 간 : 2009년 12월 17일(목)~2010년 1월 13일(수)
- 장 소 : the room (토탈미술관 내 프로젝트 스페이스)
- 아티스트 토크 : 2009년 12월 17일(목) 16:00

II. 전시 내용
인간의 성격을 탐구하는 방편이었던 그림자는 밀레나 고야 이후 부정적 의미로 사용됐다. 18세기의 화가는 단순히 회색 면을 이용해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자 했다. 이는 최소한의 방법론으로도 최대의 효과를 추출하는데 효율적이었다. 이들이 언급하는 부정적 분위기는 아름다움에 기반한 미적 쾌감에 반대되는 두려움 혹은 공포이다. 칸트는 이를 ‘숭고(sublime)’로 명명하고 ‘ 미(beauty)‘와 ‘숭고(sublime)’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숭고를 생명력 혹은 매력과 같은 미의 조건과 양립할 수 없는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즐거움으로 봤다. 즉, 미가 매력적인 것을 선호하는 취향에서 오는 것이라면, 숭고는 무언가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불쾌의 감정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숭고는 경외심 혹은 존경심으로 여겨졌다.
이번 展에서 안두진은 이와 같은 어두운, 알 수 없는 것이 자아내는 숭고함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2006년 개인전 展에서는 기독교와 불교의 회화적 특징을 한 작품에 차용하여 종교적 숭고함을 이야기했다면, 이번 전시는 더 나아가 원시시대의 숭고함을 언급한다. 원시시대 숭고를 구체화 하기 위해 종래에는 다양한 오브제와 회화 작품이 한데 어우러진 우연적인 이미지를 생산했다면, 이번 전시는 가장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회화와 실제 그림자만을 이용했다. 관객은 전시장 중심에 설치된 원형 구조물 안에 들어가는 순간 검은색 바탕에 형광색으로 그려진 어딘지 모르는 사이키델릭한 동굴 이미지를 경험하게 된다. 이 미지의 원시공간에 대한 시각적 경험은 유리창에 설치된 실루엣 그리고 그것의 그림자를 통해 공간의 신체적 경험으로 치환된다. 이미지와 실제 그림자 사이의 공간에 있는 관객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극적인 공간의 원시적 숭고를 경험하게 된다.

■ the room은 2009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공동 기획자 이여운, 서원석가 전시 진행하는 큐레이터 인큐베이팅 스페이스이다.

2009년 11월 4일 수요일

09_11+12



I. 전시 개요
- 전 시 명 : <삶은 메아리처럼 그저 따라 울려 퍼지는 핏빛 물결>
- 작 가 : 이완
- 기 간 : 2009년 11월 6일(금)~12월 6일(일)
- 장 소 : the room (토탈미술관 내 프로젝트 스페이스)
- 아티스트 토크 : 2009년 11월 23일(월) 3시

II. 전시 내용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는 주어진 범주 안에서 제한된 선택을 한다. 하지만 ‘다양한’ 선택의 기회로 인해 가려진 ‘제한된’ 조건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소비한다 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구조에 의해 규정된 소비의 작동방식으로 우리는 그 시스템 안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반응한다. 이러한 소비 시스템은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고 더 나아가 사회를 체계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규칙 중 하나로 이완은 이렇듯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보이지 않지만, 우리 내부에 침전해있는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일상적인 사물을 조작하고 자극한다.

이완의 작품은 매우 정교하다. 그러기에 작품의 물질성에 의문을 가질 틈을 주지 않고 형태적 평범함에 주목하게 한다. 그러나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의 형태로 존재하는 작품은 예기치 못한 제작 방식을 거친다. 이것이 그의 작업을 정교한 조형성 너머에서 바라보게 하는 요소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A는 B로 구성되었다'는 일반적 명제에 B를 C로 대체한다. 이때 대체된 전혀 예상치 못한 C의 등장을 통해 관습화된 개념을 재고하게 한다. 즉 평범한 사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특성을 극단적으로 변형시켜 우리의 보편적 인식체계를 부정한다.

the room에서 전시되는 작품도 같은 맥락에서 관람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대형 마트에서 구입한 소고기를 갈아서 제작한 합판과 각목은 목공 재료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만들어져 새로운 가치가 부여된다. 음식으로 소비 될 거라 예상했던 소고기는 의도적으로 조작되고 기존 관념에서 벗어난 사물을 접하는 관객은 당혹감을 표출한다. 이는 극적인 반전을 통해 우리의 행동을 조작하는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표면으로 끌어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에서는 물질성이라는 우리가 가진 또 다른 고정관념이 새로운 방법으로 제기된다. 무언가로 만들어져야만 하는 합판/각목의 물질성은 작가가 전시기간 중 수시로 전시장 내에서 작품을 완성하고 그것을 일주일간 전시 후 다시 해체 하고 또 다른 새로운 사물로 제작하는 방법론을 통해 획득된다.

■ the room은 2009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공동 기획자 이여운, 서원석가 전시 진행하는 큐레이터 인큐베이팅 스페이스이다.

2009년 9월 18일 금요일

09_09-10



케세라세라 Que Sera Sera

Ⅰ. 전시 개요
- 작 가 : 이은우, 양아치
- 기 간 : 2009년 9월 18일(수)~11월 1일(일)
- 장 소 : the room (토탈미술관 내 프로젝트 스페이스)
- 아티스트 토크 : 2009년 9월 28일(월) 3시
- 개관 요일 및 시간 : 화요일-일요일, 11: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II. 전시 내용
양아치가 만들어낸 커다란 황금과 이은우가 만들어낸 별들의 수많은 조합은 마치 자가 증식하는 바이러스와 같다. 전시장 안에 덩그러니 걸려 있는 양아치의 황금 덩어리 안의 목소리는 그 자체만으로는 뜬금없는 중얼거림이나 할 짓거리 없는 농과 같다. 하지만 이것이 황금이라는 욕망 덩어리와 결합하는 순간 커다란 비밀을 담은 암호문처럼 느껴진다. 사실 알고 봤더니 단순히 황금 칠한 덩어리와 농지거리라 할지라도 말이다. 아니, 사실은 이 사회에 덩그러니 던지는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마치 숙주와 접하기 전에는 무생물 상태이나 숙주 세포와 접하게 되면 자신을 복제해 내기 시작하는 바이러스처럼. 이런 혼란스러움을 더욱 조장하는 데에는 바이러스의 변종과도 같은 이은우의 별들도 한몫하다.
바이러스란 놈이 자신을 단순히 복제해 내는데 그치지 않고 수많은 변종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하나의 단순한 별모양일 뿐이었던 어떤 도형은 돌연변이화 한다. 이은우의 별들은 군집의 형태로 전시공간 안을 가득 채우며 헤쳐 모여 있다. 언뜻 규칙적으로 무한히 증대하는 것만 같은 이 별들을 잘 살펴보면 별과 별 사이에서 떠오르는 희미한 형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별들이 가진 다양한 색에 의해 더욱 다이나믹하게 드러나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시각적 영역들 사이의 틈 속에도 이 바이러스가 침투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별들의 조합은 그 영역을 나누는 여러 모양에 의해 하나의 커다란 군집을 이루고 이것은 또 다른 형태를 낳는다.
바이러스는 자가 증식을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변종을 만들어내고 이 변종은 또 다른 변종을 만들어 낸다. 양아치의 황금빛 루머 덩어리도, 이은우의 별 같지 않은 별들도 이미 돌연변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원형인지, 돌연변이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들이 퍼뜨리려 하는 것에 어떤 목적성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각각의 동떨어진 바이러스들 사이 희미한 선들이 읽혀지기 때문이 아닐까. 이 선들을 읽어낼 수 있다면 두 작가의 바이러스의 실체를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정말 그것이 가능하다면 역으로 바이러스가 침투된 대상의 실체 또한 읽어낼 수 있으리라. (글. 서원석)

■ the room은 2009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공동 기획자 이여운, 서원석, 서준호가 전시 진행하는 큐레이터 인큐베이팅 스페이스이다.

2009년 8월 25일 화요일

08_24 the room <이장원 개인전: The Principia> Artist Talk









09_08_24 월요일 오후 3시에 the room 이장원 작가 개인전 전 아티스트 톡이 있었습니다. 기대만큼 많은 사람이 오진 않았지만, 약 열 두명이 모여서 오손도손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왜 전시 제목을 프린키피아로 했는지 왜 태양을 가리켜야 하는지 등등 본질적인 문제도 다루었죠.
무언가에 대한 '예술적 원리' 그게 무언지 고민을 더 하게 만드는 자리였습니다.

사진은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이장원 작가와 (아래에서 부터) 프리젠테이션 이후 열심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the room 큐레이터 서원석, 이여운 그리고 평론가 이대범 선생 등등 많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the room project는 계속됩니다. ^^

2009년 8월 23일 일요일

09_08 이장원


I. 전시 개요

- 전 시 명 : Principia
- 작 가 : 이장원
- 기 간 : 2009년 8월 14일(수)~9월 13일(일)
- 장 소 : the room (토탈미술관 내 프로젝트 스페이스)
- 개관 요일 및 시간 : 화요일-일요일, 11: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II. 전시 내용


전시 제목 는 원리 법칙을 뜻하는 말로 만유인력과 행성 운행 법칙들이 담긴 뉴턴의『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Philos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에서 이름을 빌렸다.
이번에 전시되는 는 기능이 궁금한 기둥 위에 얹힌 기다란 막대가 해를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이번 작업은 작가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연장으로 이전의 ‘선트레이서’가 전송하는 영상을 보여주는 방식 대신 전송 받은 좌표에 따라 긴 막대가 계속해서 태양을 가리킨다. 하지만 막대 자체에는 태양의 위치를 감지하는 센서가 없다. 다른 곳에 설치된 ‘선트레이서’로 인해 는 실내, 실외 어디에 있든 해를 향하게 되며 태양을 향해 고정된 움직임을 통해 끊임없이 태양을 지시한다. 지구의 공전과 자전으로 말미암아 태양을 보는 위치가 달라지고 는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지점은 태양에 고정되어 있고 실제로 움직임 없이 고정된 조각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역치(閾値) 미만의 자극은 지각하지 못하기에 태양의 움직임 또한 쉽게 지각하지 못한다. 오랜 시간을 두고 보지 않는다면 작품의 움직임 또한 눈치 챌 수 없다.
뉴턴은 자신의 책 제목을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라고 하고 수학적으로 자연을 철학/사유하고자 했다. 그러나 뉴턴의 시대보다 3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장원은 <프린키피아>라는 전시로 자연을 예술적으로 생각해 보자고 한다. 인간은 언제나 지각을 통해 정보를 얻고, 사유를 통해 추론한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처럼 지구상에는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기에 인식 못하는 현상들이 너무나 많다. 흙, 공기, 땅, 산과 강, 바다 등 세상 모든 자연이 숨 쉬며, 움직이고 변하지만 쉽게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지난 50년 동안 지구는 그 어떤 때보다도 빠르고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지각하지 못할 정도의 느리고 미약한 변화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알고서 모른 채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가는 계속해서 해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를 비롯해 인류 역사상 언제나 숭배되는 태양, 모든 에너지의 원천인 태양을 가리키며 전은 태양 그 자체를, 그리고 태양을 바라보는 우리가 사는 여기를 생각하게 한다.
(글: 서준호)

09_07 문무왕



I. 전시 개요

- 전 시 명 : Lyrical Playground
- 작 가 : 문무왕
- 기 간 : 2009년 7월 17일(금)~8월 9일(일)
- 장 소 : the room (토탈미술관 내 프로젝트 스페이스)
- 개관 요일 및 시간 : 화요일-일요일, 11: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II. 전시 내용

문무왕에게 공간은 마치 아이들의 놀이방과 같다. 그리고 그에게 선택된 오브제들은 모두 놀이방을 꾸미기 위한 장난감들이 된다. 물건에서 오브제로, 공간의 유희를 거치는 과정은 아이들의 ‘놀이’행위를 닮아 있다. Lyrical Playground展에서는 the room이라는 작은 전시공간과 신문지들이 이러한 역할을 한다. 전시장 안에서 펼쳐지고 오려지고 쌓여있는 신문지들은 단순히 공간에 놓인 오브제라기 보다는 그 자체가 공간에 그려진 이미지가 된다. 신문지를 통해 소설이라는 부제를 드러내는 것은 이전의 작업들과는 다른 어떤 변화를 감지하게 한다. 이전의 작업들이 서정적 공간으로서 개인적 감성이 그득히 펼쳐지는 것들이었다면 Lyrical Playground에서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공존하는 사회적 성격의 신문이라는 요소가 적극적으로 사용됨으로서 놀이공간의 역할을 확장시킨다. 이미지는 텍스트요 텍스트 또한 이미지인 것이다. 즉 자신의 말과 글과 이미지에 신문이라는 다층적인 요소를 입힘으로서 공간드로잉이 3차원의 공간에서 상상의 공간으로 영역의 전환을 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시장안에 넘쳐나는 음성들(유시민의 미디어법 관련 강의, 이명박 정권을 비방하는 조선중앙통신) 역시 미디어의 해악에 대한 그 본연의 역할이라기 보다 놀이방 영역의 확장이라는 의미에서 더 적극적인 오브제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문무왕은 소위 ‘소설 쓰고 있다’. 본연의 공간 드로잉이라는 이미지적 영역과 소설의 텍스트적 영역을 신문이라는 다중적 영역을 통해 상상의 오브제가 혼재하는 공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공간은 청각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항상 시끄럽다. 하지만 그들이 상상하고 즐기는 영역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활기차다. 공간에 그 행위와 활력이 그려진다. 문무왕의 공간 역시 여기에 있다. 언제나 가능의 영역을 누리리라.(글. 서원석)

09_06 홍범




. 전시 개요

- 전 시 명 : Somewhere in Mind
- 작 가 : 홍범
- 기 간 : 2009년 6월 10일(수)~7월 9일(목)
- 장 소 : the room (토탈미술관 내 프로젝트 스페이스)
- 개관 요일 및 시간 : 화요일-일요일, 11: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II. 전시 내용

기억 [記憶, memory]: 생활체 (生活體: 사람이나 동물 등)가 경험한 것이 어떤 형태로 간직되었다가 나중에 재생 또는 재인(再認) ·재구성되어 나타나는 현상.

체험-저장-재생으로 이어지는 현재 경험의 기억은 어떤 특정한 계기로 인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를 때까지 끊임없이 재구성되어 또 다른 새로운 형태로 구현된다. 이것은 누군가 말했듯, 인간 기억력의 장점이다. 즉 인간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전부가 아닌 특히 인상적인 것들만 기억하는 재능(?)을 ‘보유’하고 있다. 6월10일부터 7월9일까지 the room 에서 열리는 SOMEWHERE IN MIND 展 에서 작가 홍범은 '보유'하고 있던 기억의 공간들을 끄집어내어 제시한다. 작가에게 선택 받아 기명된 기억내용은 작가라는 매개체를 거처 변화되어 재생된다.

까만 잉크 바탕 위에 흰 점들이 모여 어떤 사람이 되기도 하고 특정한 공간이 되어 흘러 순행하고 역행한다. 전시장 전면에 유리창에 부착된 시트지 작품에는 공간을 인식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체계화 시키는 작가의 내적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재(再) 표현된 공간의 흔적들은 사이사이 비치는 전시장 밖의 실제공간과 중첩되어 기억의 간극을 암시한다. 또 미술관 입구 원통에 설치된 그림자 놀이 작품에서는 흰색의 점들이 반전되어 검은 그림자로 제시된 기억의 흔적이 재생된다. 매일매일 축적된 경험과 공간은 분해되고 홍범만의 언어로 조합되어 실제도 상상도 아닌 모호한 기억의 흔적으로 시각화 된다. 이것이 홍범이 혹은 당신이 기억하는 그 곳 이다. (글.이여운)


2009년 5월 11일 월요일

09_05 홍수연


I. 전시개요

- 전 시 명 : <>
- 작 가 : 홍수연
- 기 간 : 2009년 5월 8일(금)~6월 3일(수)
- 장 소 : the room (토탈미술관 내 프로젝트 스페이스)
- 아티스트 토크 : 5월 25일 월요일 15:00
- 개관 요일 및 시간 : 화요일-일요일, 11: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II. 전시 내용

분절과 분절 사이를 미끄러지는 ‘층들’

단순한 예로 시작해보자. 시간과 시간 사이에 분이 놓이고, 분과 분 사이에 초가 놓인다. 이러한 규격화된 틀을 통해 하루를 살고, 일년을 살고, 평생을 산다. 생의 시작을 알리는 것도, 생의 마지막을 알리는 것도 역시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환산하기 좋은 단위를 설정하고 그것을 통해 분절된 세상과 마주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다. 물론 생은 연속체이지 분절체가 아니다. 그렇다면 분절과 분절 사이, 즉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아니면 지워버렸거나, 망각해버린) 그 지점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단순한 예에서 시작했지만, 질문은 복잡해졌다.

삶은 연속체이다

홍수연 작품에 안착되어 있는 대상들은 어떤 뚜렷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기에 프레임 가득 메운 단색면이 우선적으로 포착된다. 단색면이 뿜어내는 적막(寂寞)에 잠식될 쯤, 그 고요를 흔드는 미세한 떨림이 포착된다. 어떠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그것을 무엇이라 이름 부를 수 없는 그 무언가가는 응결된 이미지로 보이지만, 바로 그 다음 순간 자신의 잔상을 보인다. 이미지의 윤곽은 고착되지 않고 분절과 분절 사이의 미지의 순간으로 미끄러진다. 귀결점 없이 지속적으로 미끄러진다는 것을 바꿔 말하면 즉흥성과 우연성을 근간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홍수연의 작업방식은 오히려 그 반대로 향하고 있다. 오히려 철저한 계산과 의도로 진행된다. 계산된 캔버스의 기울기, 아래 층을 윗 층에 부유하게하고 그 층이 또 다른 층에 부유하도록 조절된 물감의 양이 만들어내는 투명성. 그리고 이를 통해 획득되는 시간성.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하나의 층이 하나의 형태이면서 다음 형태의 잔상으로 존재하게 된다. 일견 이러한 구조가 또 다른 형태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층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화면 전체가 천천히 진화하고 있는 유동적 이미지로 인식된다. 최소 단위로 분절 시켜 그것을 규정하려 하여도, 그것은 또 다시 다른 지점을 향해 진화한다. 중첩과 겹침, 드러냄과 숨김, 즉 ‘층’이 아닌 ‘층들’을 통해 의미가 획득된다.
아마도 지금까지 우리는 층에 대해서 사고하는 방법을 학습했고, 층과 층을 구별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더 나아가 그것이 진리라고 믿으며 의심하지 않았다. 연속체를 사고하기 보다는 그곳에서 분절점을 찾아 그것을 논리에 맞게 재구성했다. 그러면서 분절점과 분절점 사이를 희생시켰다. 그러나 홍수연은 그 지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복원한다. 그의 색면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리고 변화하는 대상들도 너무 천천히 변하고 있기에 전체적으로는 적막하다. 그러나 돌이켜 보건데 우리의 삶이라는 것 역시 거대한 또는 중요한 분절점으로만 규정 할 수 없다. 거기에는 그간 우리가 잠시 잊었던 사소하고 느릿한 변화들로 가득하다. 홍수연은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자! 그렇다면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자. 익숙해져 있던 것들이 낯설게 보이지 않는가. 층으로만 인식했던 것에서 그곳이 실상은 투명막의 생으로 존재한다. 적막으로 가득했던 공간을 깰 수 있는 그들의 활발한 웃음과 층과 층들이 만들어 놓은 충돌의 소리에 관심을 가져보자. 이제 여기에 귀를 기울이자. (글. 이대범)

09_04 최기창 아티스트 토크



4월 18일 오후 3시 어느 날씨 맑던 날 최기창 선생님의 아티스트 토크가 있었습니다.
인식, 변화, 일상, 어긋남.
많은 단어가 오고가고 많은 생각과 웃음이 오고 갔습니다.

2009년 4월 12일 일요일

09_04 최기창 0403-26

전시 개요

- 전 시 명 : <창(窓) The Windows>
- 작 가 : 최기창
- 기 간 : 2009년 4월 3일(금)~4월 26일(일)
- 장 소 : the room (토탈미술관 내 프로젝트 스페이스)
- 개관 요일 및 시간 : 화요일-일요일, 11: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시각은 기억을 지배한다. 이미지는 기억을 지배한다. 이미지로 인한 왜곡조차도 기억을 지배한다. 그러나 최기창은 이 익숙한 감각에 어긋난 조화를 하나 더 부여함으로서 일상의 정보를 비튼다. 4월 3일부터 26일까지 the room에서 열리는 <창(窓)>에서 최기창이 취하고 있는 방법은 일상적인, 우리에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시각과 기억에 대한 인식을 분해하는 것이다. 이전의 작업들에서 일상의 사건에 주목했던 것과는 달리 최기창의 <창(窓)>은 사건을 인식하는 그 순간 작용하는 감각들을 비틀어 놓는다. 일상적인 인식들을 흔들어 놓음으로서 역으로 권태로운 일상을 비꼰다.

어둠 속에서 관객의 움직임을 따라 연속적으로 터지는 스트로보 라이트의 시각 효과, 그리고 관객이 서 있는 공간에 퍼지는 옅은 안개의 공간, 여기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유리창에 부착된 창 너머 세상의 정지된 찰나의 풍경은 이 모든 경험과 감각이 처연해질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인식의 분해는 모호한 공간을 낳고 모호한 공간은 익숙한 일상을 분해한다.

최기창에게 있어 권태도 일상도 모두 순간적인 것이다. 가령 형광등이 켜지기 직전 몇 번의 섬광이 얼마간 우리 눈에 잔상으로 남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의 눈이 다시 형광등의 빛에 익숙해 지는 것처럼. 그같은 순간적 경계의 상태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 최기창의 권태이다. 인식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거나.

(글.서원석)

09_03 기는 풍경 아티스트 토크

3월 28일 기는풍경과의 아티스트 토크가 있었습니다. 기는 풍경의 이전 작업들과 현재 작업들에 대한 이미지들을 보고 설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참여해주신 오재우, 이은우, 최기창, 이대범 선생님께 감사한 말씀을 드리며.

어느 싸하던 봄날. 행동하다. 참여하다. 라는 동사를 떠올리며 그 속에 미술을 대칭시켜 보았습니다. 흔한 질문이지만 여전히 답을 찾기는 힘든 말들. 기어가듯 뭉게뭉게 그러한 풍경을 앞으로도 잘만들어나가 주시겠지요.








09_02 텍스트 리딩

노순택 선생님과의 텍스트 리딩이 3월 17일에 있었습니다.
몇 번의 일정 변경에도 불구하고 참석하셔서 좋은 말씀 많이 나눠 주신 선생님.





나는 새, 날지 못하는 새, 모이 먹는 새, 모이 보내는 새, 그냥 새....새가 참 많습니다.^^

09_02 appropriating reality 전경



09_03 crawling Landscape 0312-0401













2009년 3월 4일 수요일

09_02 appropriating reality 오프닝 / 아티스트 토크

2월 10일 오프닝에 이어 2월 21일 노순택 선생님의 아티스트 토크가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꽃들이 만개하는 봄날 3월이 왔군요. 어느새. 성큼.)
많은 손님들이 찾아주셔서 평소에 궁금했던 이야기, 선생님의 이야기, 사진 이야기, 찍새 이야기 등 끊이지 않는 선생님의 이야기 들을 끄집어 내 주셨습니다.

이여운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님의 진행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블로그를 직접 열어 보여주시며 작업노트 뿐만 아니라 온갖 사진 이야기 꾸러미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선 사진은 개털이다. 라는 명언을 남겨 주셨더라지요.

참 해맑으신 노순택 작가님